안녕하세요. 아름다운 종로 곳곳의 이야기를 전하는 종로픽플 3기 윤쓰입니다.
지난번에는 ‘그땐 그랬지, 광장시장 편’으로 인사드렸는데요.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옛 모습과 현대 모습이 공존하는 북촌한옥마을 계동길에 다녀왔습니다!
옛것과 현대가 공존하는 북촌 계동길
북촌 계동길은 전통 한옥과 수많은 가지 모양의 골목이 6백 년 역사 도시의 풍경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곳입니다. 1397년(태조 6년) 세워진 의료원 제생원(濟生院)에서 지역명이 유래돼 제생동으로 불렸는데 시대가 흐르면서 계생동으로 변했습니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4년, 일제는 토지조사사업 때 ‘계생동이 기생동(妓生洞)과 이름이 비슷하다’라며 ‘생’자를 떼서 지금의 이름인 계동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계동길 일대에는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중앙고등학교, 휘문고등학교 등이 설립됐는데 훗날 독립운동의 주역들을 길러낸 곳이기도 합니다. 1970~1980년대 도시 이주민의 급증으로 다세대 주택과 빌라들이 생겨나면서 한옥이 밀려났었는데 1983년 북촌 보존 계획으로 한옥 일부가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북촌 계동길 곳곳에는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 옛 가게들이 곳곳에 남아있는데요. 두 사장님으로부터 북촌 계동길의 옛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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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대구참기름집
서정식 사장님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북촌 계동길에서 참기름집을 운영 중인 서정식입니다. 1975년 5월부터 시작해 1990년 3월 계동길에 자리 잡았어요. 원래는 장모님이 1975년도부터 시작한 곳으로 저는 다른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결혼하면서 장모님이 오랫동안 운영하시던 참기름집을 그만둔다고 하시길래 제가 하겠다고 해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죠. 처음에는 종로3가에서 운영했는데 건물 주인이 가게를 비워달라고 해서 나오게 됐어요. 마침 이 자리에서 30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시던 분이 가게를 내놓았길래 이곳으로 왔어요.
Q. 당시 계동길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지금이야 영업하는 가게도 많고 카페나 놀거리도 많지만, 당시에는 주변이 다 가정집이었어요. 조용한 계동길이었죠. 한옥도 지금보다 많았고 말 그대로 ‘동네 거리’로 쌀가게나 정육점, 식료품점 같은 살림하는데 필요한 가게들이 많았어요.
Q. 보통 어떤 분들이 많이 방문하세요?
여기가 시장 같은 곳은 아니라 동네에서 오래 산 단골 주민분들이 대부분 많이 오죠. 10년부터 40년까지 단골손님이 다양하고 방송에 몇 차례 소개되면서 찾아오시는 분들도 늘었어요. 또 근처에 자리한 중앙고등학교에서 드라마 ‘겨울연가’를 촬영해 이곳이 일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됐는데 꼭 계동길에 들러 기념품을 사가곤 했어요. 그게 일본에서도 소문이 났는지 그 이후에도 일본 잡지사, 기자 등 많은 사람이 방문하더라고요. 일본 잡지사에서도 2012년, 2015년에 저희 가게를 인터뷰했어요. 신기하죠.
Q. 사장님에게 북촌 계동길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이곳에 와서 밥 먹고 오랫동안 살아왔으니까 저에게는 ‘삶의 터전’이죠. 저는 원래 성북구 정릉에 살았는데 오랫동안 이곳에서 가게를 하니 이제는 계동길이 제 집 같아요.
Q. 일하실 때 지키시는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정직한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물건이든 정직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늘 정직한 참기름 맛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 나이가 77세인데 사실 몇 년이나 더 할지 모르죠. 그 남은 기간 정직하게 유종의 미를 거두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몇십 년을 항상 찾아주는 주민분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요.
정겨운 계동길 마트
이종혁 사장님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북촌 계동길에서 1994년부터 수연홈마트를 운영한 이종혁입니다. 북촌에서는 1983년도부터 살았어요. 원래는 이 가게가 아니라 길 끝에 있는 ‘왕짱구분식’이라는 가게 옆에서 4평짜리 구멍가게로 시작했어요. 낙원상가에서 오랫동안 종업원으로 일하다 가게를 나오게 되면서 계동길 쪽에 가게를 알아보게 됐죠. 내 가게를 시작하기 좋을 것 같아 이곳에 자리 잡았어요.
Q. 많은 분들이 가게 이름이 왜 수연홈마트인지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자녀가 둘 있는데 큰딸 이름은 ‘이수연’, 아들 이름은 ‘이용수’예요. 가게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수연’으로 하면 이름이 한 글자씩 들어가니까 서운하지 않겠다 싶어 ‘수연홈마트’로 지었어요. (웃음)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고 있는지는 몰랐네요.
Q. 당시 계동길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서울 시내에서 유일한 시골 동네가 계동길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주민들이 가장 많이 살았고 제가 구멍가게 할 당시에도 간장, 고추장, 된장, 성냥 같은 가정집에서 쓰는 물건을 손님들이 제일 많이 구매해 갔어요. 지금은 반대로 마트에서 제일 적게 나가는 품목이에요.
Q. 보통 어떤 분들이 많이 방문하세요?
예전에는 주민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관광객들도 늘었어요. 하지만 근처에 학교가 많아 학생들이 가장 많아요. 북촌에서 오래 살면서 수연홈마트도 운영해 주민자치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덕분에 아는 분들이 많아져 친분이 있는 주민분들도 많이 오죠.
Q. 일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평소에 손님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해요. 예전에 저에게는 손주뻘인 어린이들이 방문했는데 저에게 “아저씨~”라며 부르던 게 기억에 남아요. 아직 어린아이들과 소통이 되는 나이구나 싶어서요. (웃음) 또 100세 넘은 어르신 분들도 종종 오시는데 제가 친근하게 안부를 물으며 대화하면 굉장히 좋아하세요. 남녀노소 나이 불문하고 이렇게 손님들과 같이 대화하고 소통했던 그런 날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Q. 이전과 달리 계동길이 달라졌다고 느낀 점이 있나요?
오목조목했던 동네가 너무 반듯하게 바뀌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가정집과 생활용품 판매하는 가게, 분식집이 대부분이었는데 점점 카페나 액세서리 파는 곳들이 많이 생기면서 옛 모습이 잊히는 것 같아 아쉽더라고요. 세월의 흐름대로 가는 것이니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생각하면서도 전통 방식이 계속해서 바뀌고 옛 모습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원서동에 있던 한옥도 전부 빌라로 바뀌고 오래 사시던 분들도 아파트로 이사 가시는 걸 보니 마음이 좀 울적하더라고요.
Q. 사장님께 북촌 계동길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마음에 와닿는 길’ 같아요. 저는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어요. 시골을 ‘정겨운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24살에 북촌에 올라와서 같은 감정을 느꼈거든요. 다른 곳보다는 조금 더 시골 같고 정겨운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요? (웃음)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다른 데에 비해 ‘마음에 와닿는 길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가게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은 무엇인가요? 계동길에서 꼭 가볼 만한 장소도 추천해주세요.
성냥갑이라고 요즘은 많이 없어진 물건인데 아실지 모르겠네요. 요즘은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여전히 성냥갑을 찾는 손님들이 계셔서 항상 구입해놔요. 구멍가게에서 장사할 때부터 판 물건이라 더 추억이 담긴 물건이기도 하죠. 북촌도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아직 옛정서가 남아있는 곳들이 많아요. 관광객분들이 이곳에서 사진 찍는 모습을 보면 제 마음을 위로받는 것 같죠. 이 거리를 많이 걸어 보시는 걸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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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대구참기름집 서정식 사장님. 북촌 계동길에서 오랫동안 매장을 운영하셨던 만큼 인터뷰하는 중에도 많은 주민분들이 찾아오셨는데 그 모습이 정겹고, 긴 세월이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주민분들이 저에게 사장님과 얽힌 추억을 들려주시기도 했는데 정말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친절하게 인터뷰해주신 두 번째 수연홈마트 이종혁 사장님. 북촌에 오래 거주하시면서 가게를 운영하셔서 계동길 과거의 따뜻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사장님이 얼마나 이 거리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종로 추억탐방 시리즈] 북촌 계동길 편, 재미있게 보셨나요? 두 분으로부터 1990년대 북촌 계동길의 이야기에 대해서 짧게나마 들어봤는데요. 몰랐던 과거의 동네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뜻깊었습니다. 다들 종로에 가신다면 계동길 골목 골목을 한번 방문해보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