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동 미술자료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의 가옥

종로구립 고희동 미술자료관은 등록문화재 제84호로(2004년에
등록) 고희동 화백이 일본 유학 후 돌아와 직접 설계하고 41년 간
거주한 근대식 한옥으로 복원공사를 거쳐 2012년 11월에
개관하였습니다.

  • 고희동 미술자료관 외관 사진입니다.
  • 고희동 미술자료관 외관 사진입니다.

고희동 미술자료관 내부 사진입니다.

가옥은 전통 한옥과 일본 가옥의 절충을 시도하였으며 지상 1층의 사랑채(사랑방, 화실, 자료실, 제1전시실)와 안채(제2전시실, 제3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통 한옥의 구조를 기본으로 갖고 있으나 채와 채 사이를 연결한 복도는 가족들이 안채와 바깥채를 오가기 편하도록 하기 위한 점이 돋보입니다.

‘한국 근대미술의 산실인 동시에 일제강점기 주거 모습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가옥’으로 인정받아 2004년 ‘원서동 고희동 가옥’이란 이름으로 등록문화재로 등재되었습니다.

고희동 미술자료관 내부 전시품 사진입니다.

고희동 미술자료관은 고희동 화백의 다양한 작품이 탄생하였으며 당대의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한 공간으로써 근대예술사적 의미와 한옥 건축의 변화양상을 바탕으로 고희동 화백의 작품세계 및 근대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가옥의 아름다운 마당을 활용한 음악회, 전시 연계 프로그램 등 다양한 콘텐츠 또한 기획하여 시민들에게 문화향유의 공간을 제공할 것입니다.

춘곡 고희동 (春谷 高羲東 1886.4.13~1965.10.22)

서울 비파동 출생으로 관립 한성법어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수학한 후 1904년 광학국 주사로 임명되어 궁에서 프랑스어 통역 및 문서 번역을 하는 관리가 되었습니다. 1907년 심전 안중식 • 소림 조석진 문하에 들어가 그림을 배웠고, 1909년 한국인 최초로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로 관비 유학을 떠나 1915년 졸업하였습니다. 귀국 후 국내에 서양화를 이식하고자 서양화가, 도화교사로서 활동하였으나 1920년 후반 동양화로 전향하여 전통적 수묵화법에 서양화의 색채 및 기법을 쓰는 절충양식의 새로운 한국화를 시도했습니다.

고희동 화백은 미술행정가로서의 면모가 뚜렷하여 1918년 최초의 근대적 미술단체인 서화협회 결성을 주도하여 총무를 역임한 것을 시작으로 1945년 조선미술협회 초대회장, 1950년 대한미술협회 회장,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초대회장을 역임하였으며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회) 심사위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정계에도 진출하여 1960년 민주당 참의원으로 당선된 고희동 화백은 미술계의 발전과 제도 마련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1965년 향년 80세로 타계하였습니다.

위치

종로구 창덕궁5길 40 (원서동 16)

건축형태

한옥 (지상 1층) 3개동

건물현황

부지 : 540㎡ (163평) ㅣ건물 : 162㎡ (49평)

  • 사랑방

  • 화실

  • 내부

  • 앞마당

관람 안내

관람시간
10:00~18:00 (관람종료 20분전까지 입장가능)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당일, 추석 당일
관람료
무료
안내사항
문화재보호 차원에서 신발을 벗고 입실
문의
02-741-8424

전시 관람 시 유의사항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관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다음 사항을 준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작품을 손으로 만지거나 손상을 입힐 수 있는 행위를 절대 삼가 주십시오.
  2. 음식물 반입과 애완동물 출입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3. 전시실 입장 전, 휴대전화는 전원을 꺼주시거나 진동으로 전환하여 주십시오.
  4. 타 관람객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정숙해 주시고 눕거나 뛰는 행위는 삼가 주십시오.
  5. 어린이를 동반할 경우 보호자의 각별한 지도를 부탁드립니다.
  6. 미술자료관의 모든 공간은 금연구역 입니다.
  7. 미술자료관 내부에는 화장실이 없습니다. (야외 공중화장실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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