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한 편에는 수많은 말보다 더 깊은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짧은 문장 속에 미처 다 전하지 못한 감정과 생각이 스며 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시인이 바라본 세상과 삶의 흔적을 발견하곤 하죠. 그런데 그 마음을 발견하는 방법이 하나일 필요는 없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방식으로도 문학이 전하는 감동을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월 27일, 가을이 깊어가는 윤동주문학관에서 특별한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청각장애 청소년들을 위한 수어해설 특별문학투어 〈동행마실〉이 열린 것인데요. 수어로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만나고 시인의 길을 함께 걸었던 그날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윤동주문학관
 ̄
손끝으로 전해지는 윤동주의 시와 삶
지난 10월 27일, 윤동주문학관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동행마실〉에 참여한 국립서울농학교 고등학교 2학년 학생 15명인데요. 이날 학생들은 윤동주문학관 김승 해설사의 설명과 종로구수어통역센터 장경은 수어통역사의 통역을 통해 특별한 문학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투어는 윤동주문학관의 전시공간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인왕산 자락에 자리한 윤동주문학관은 시인의 삶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2012년 문을 연 공간입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종로 누상동에서 하숙하며 인왕산에 올라 시상을 다듬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십자가〉, 〈바람이 불어〉, 〈또 다른 고향〉 등 지금까지 사랑받는 대표작들이 바로 이 시기에 탄생했죠. 특히 문학관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청운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조성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합니다. 물의 흐름에 다시 힘을 불어넣던 가압장이 이제는 시인의 문학을 통해 지친 마음에 위로를 건네는 공간으로 거듭난 것이죠.
문학관에 들어선 학생들이 가장 먼저 만난 곳은 제1전시실 '시인채'입니다. 윤동주의 순수한 시심(詩心)을 상징하는 새하얀 공간으로 시인의 생애를 시간순으로 살펴볼 수 있는 사진 자료와 친필 원고 영인본 등이 전시돼 있습니다. 학생들은 해설사의 설명과 수어통역을 통해 시인 윤동주뿐 아니라 인간 윤동주의 삶을 하나씩 알아갔는데요. 교과서에서 접했던 시인의 이야기를 사진과 원고를 통해 보다 생생하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어 시 〈자화상〉에서 영감을 얻어 조성한 제2전시실 '열린 우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곳은 기존 물탱크의 윗부분을 열어 하늘이 보이는 중정으로 탈바꿈시킨 곳인데요.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 위로 하늘이 펼쳐지는 독특한 구조가 눈길을 끕니다. 다음으로 찾은 제3전시실 '닫힌 우물'은 물탱크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공간입니다. 외부와 단절된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윤동주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담은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데요. 학생들은 영상을 통해 시인의 삶을 되짚으며 잠시 문학의 세계에 머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 개의 전시실을 둘러본 학생들은 문학관 밖으로 나와 시인의 언덕으로 향했습니다. 윤동주가 시상을 다듬기 위해 오르곤 했던 인왕산 자락을 함께 걸으며 시인과 종로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봤는데요. 문학관에서 시작해 시인의 언덕까지 이어진 한 시간의 여정은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만나고 이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동행마을 투어 모습
 ̄
누구나 함께 즐기는 문화예술을 꿈꾸며
이번 〈동행마실〉은 지난 6월 종로문화재단과 종로구수어통역센터가 맺은 업무협약에서 출발했습니다. 두 기관은 '장벽 없는 문화, 함께 만드는 포용의 도시 종로'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청각장애인들이 보다 폭넓은 문화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기로 했는데요. 종로 곳곳에서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종로문화재단, 청각장애인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사회 참여를 지원해 온 종로구수어통역센터가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협력의 가능성을 열어간 것입니다.

종로문화재단-종로구수어통역센터 업무협약 체결
수어와 음성 해설이 어우러진 〈동행마실〉은 문화예술을 함께 즐기는 다양한 방식을 생각해 보는 자리였습니다. 종로문화재단은 이번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종로구수어통역센터와의 협력을 이어가며 서로 다른 언어와 소통 방식이 존중받는 문화예술 환경을 만들어 나갈 예정인데요.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문화를 누리고 다채로운 예술적 경험을 나눌 수 있도록 장벽 없는 문화예술을 향한 발걸음이 계속되길 기대해 봅니다.

기원삼 종로구수어통역센터장
기원삼(종로구수어통역센터장)
"종로에는 역사와 문화가 깃든 공간이 많지만 그동안 농인들이 수어해설과 함께 문화예술을 즐길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이번 투어를 통해 청각장애 청소년들이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보다 깊이 있게 만날 수 있어 뜻깊었습니다. 앞으로 수어해설뿐 아니라 직접 참여하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기회가 확대되길 바라며, 두 기관의 협력과 노력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장경은(종로구수어통역센터 수어통역사)
"시에는 은유와 비유가 많아 그 의미를 수어로 온전히 전달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학생마다 수어를 이해하는 정도도 다르기 때문에 더욱 세심한 통역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학생들이 문학과 문화를 더욱 쉽고 즐겁게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동행마실 담당자(윤동주문학관 염주임)
"처음에는 전시를 눈으로 관람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문학관을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보였어요. 글자로만 제공되는 정보나 음성 중심의 전시 해설이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번 〈동행마실〉은 저희에게도 문화예술 접근성을 다시 생각해 보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사람들이 불편함 없이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전시와 프로그램을 세심하게 살피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겠습니다."